잔잔한 웃음을 짓는 사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잊혔다 싶어도 어느 순간 스멀스멀 떠오르고, 익숙한 향기나 풍경 하나에도 선명한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1박 2일’, ‘삼시세끼’와 같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김대주 작가에게 시골은, 추억과 감성이 깃든 장소다.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일지라도, 어린 시절을 시골 마을에서 보낸 김대주 작가에게는 그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제작 일정 동안 농촌에 머무를 때면 그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한다.
김대주 작가를 이야기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프로그 램이 있다.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이다. 그는 EBS 에서 라디오 작가로 시작해, MBC 느낌표를 거쳐, 2008년 KBS 1박 2일에 막내 작가로 합류했다. 거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박 2일의 작가로 지냈고, 이후에는 흔히들 말하는 ‘나영 석 PD 사단’으로 ‘삼시세끼’, ‘윤식당’, ‘꽃보다 청춘’과 같은 프 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 없 이,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설정 없이도 사람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관계의 온기가 작품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요리를 하고, 장을 보고, 함께 여행하며 길을 헤매는 과정 속 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따듯한 유머와 여유가 시청자들 에게 소소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그는 지금도 그런 소박한 웃음을 전하는 프로그램을 만 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소한 공감을 줄 수 있는 프 로그램이 하고 싶다. 큰 웃음은 없을지라도, 잔잔하게 ‘피식’ 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야기. 김대주 작가가 앞으로도 계 속 써 내려가고 싶은 예능의 한 페이지다.
1박 2일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참여했던 프로그램이자, 방송과 관련해 많은 걸 배운 프로그램이에요. 여행하며 만들어지던 자연스 러운 순간들, 사람들과의 교감,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배 운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1박 2일에서 얻은 경험이 다양한 작품을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고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삼시세끼’에서 출연자들의 자급자족하 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제작진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 서 ‘우리가 좋아하는 게 뭐였지?’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래 서 떠오른 이미지는 조용한 시골 마을의 집이었죠. 집 뒤로 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강이 흐르는 풍경. 1박 2일을 촬영하 면서 시골 마을에 다녀 보니 마을에 항상 평상이 있더라고 요. 평상까지 더하니까 저희가 꿈꿨던 이미지가 완성됐어요. 아궁이에서 밥을 짓고 평상에 앉아 삼겹살을 굽고, 옆 텃밭 에서 상추를 따서 바로 먹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죠. 이런 생활이 불편할 수 있지만 한 끼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고 먹은 후에는 여유롭게 쉬는 단순한 생활을 보여주는 반 복적인 장면 속에서, 시청자들이 ‘힐링’과 ‘편안함’을 느꼈으 면 했어요.
특히 시골 마을이 배경인데요, 설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한 부분이 있었나요.
다양한 계절에 여러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했어요. 사실 방송 프로그램은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이에요. 회의도 많이 하고, 그러면서 재미있을 것 같은 아이 디어도 많이 준비해요. 하지만 그 모든 걸 아무 의미 없게 만 드는 게 결국은 ‘자연’이더라고요. 그래서 제작팀은 많은 걸 준비해 가지만, 자연의 흐름에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 공간에서 자연의 리듬에 맞춰 저희도 흘러가려고 해요.
촬영 장소를 정하고, 공간을 구성하는 과정이 궁금해요.
한 군데를 정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100여 군데의 집을 둘러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보통 3~5개월 정도의 긴 준비 기간 이 필요해요. 처음부터 ‘이번엔 이 섬에서 해야겠다’라고 정 하는 게 아니라, 섬도 보고 산도 보면서 여러 후보지를 돌아 보면서 결정하죠. 삼시세끼 정선 편을 할 때도 처음이라 굉장 히 힘들었어요. 피디와 작가가 조를 짜서 전국으로 흩어져서 마을을 탐방하기도 하고, 지자체나 지인에게 지역을 추천을 받기도 했어요. 결국엔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결정하는 경우 가 많아요.
촬영 장소가 정해지면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기 본적인 환경을 정비하는 작업을 해요. 완전한 세트장을 만드 는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이 꿈꾸는 ‘로망’이 실현될 수 있도 록 공간을 다듬죠. 이 작업에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 니다. 특히 제일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텃밭’이에요. 텃밭 을 만들 때는 주변 농가에 도움을 받기도 했고, 제작진 중에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분이 계셔서 조언을 얻기도 했어요. 텃 밭에 많은 것을 심고 싶긴 했지만, 과실 나무나 뿌리 채소는 현실적으로 재배가 어렵더라고요. 제일 쉬운 건 쌈 채소 같은 것들이죠. 직접 씨를 뿌려서 키우기도 하고, 모종들을 심어 가꾸기도 하면서 텃밭을 꾸몄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경험이 프로그램 제작에 영향을 주 었나요?
프로그램을 하면서 누구보다 편했고, 오히려 전문가가 된 기 분이었어요. 시골에 가면 도시에서 자란 제작진들은 하늘의 별만 봐도 놀라고, ‘쌀이 저기에서 자라는 거냐’며 신기해하거 든요. 저는 소가 밭을 갈고 아궁이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초가 집이 있는 그런 풍경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어요. 동네 아저씨 가 돼지 오줌보를 부풀려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하면서 자랐죠. 그런 경험 덕분에 시골의 정서를 이해하고, 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도시에서 자란 작가님보다 훨씬 더 유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에게 농촌은 어떤 이미지예요.
도시는 사람이 많고 모든 것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잖아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괜히 마 음이 급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신기하게도 농촌에서 는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가요. 걷는 사람도, 지나다니는 차도, 게다가 풍경마저도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죠. 농촌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이 그저 바 라만 봐도 편안함을 주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지속 가능한 농업’과 ‘환경 보호’가 우리 사회가 직 면한 중요한 화두인데요. 방송 제작에서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요?
촬영 중에는 무분별하게 생수를 소비하거나 음식을 낭비하 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어요. 그래서 많은 제작진이 텀블러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음식 쓰레기에 대한 인식을 바꾼 계 기가 있어요.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촬영하고 남은 음식이 있 었는데, 이를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더라고요. 처음에는 ‘남 들이 먹던 걸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먹을거리가 부족한 그들에게는 우리가 먹고 남긴 음식이 귀 중한 식재료였던 거예요.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음식물을 무분 별하게 버려왔던 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어요. 방 송에서도 이러한 지속 가능한 습관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주제나 프로그램이 있나요?
외국인이 한국의 시골에서 ‘삼시세끼’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요. 우리가 ‘윤식당’을 통해 해외에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반대로 외국인이 강원도의 산골에서 적 응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또한, 농 촌을 알리는 농촌진흥청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 면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고 싶어요. 단순한 예능이 아니라, 농 촌의 가치를 공유하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프로 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린매거진과도 결이 같겠네요!